[20220829]
[동녘글밭] 2022.08.29(월)
이재명과 7777
지켜 보았던 대로,
기대했던 대로 이재명이
민주당의 대표가 되었읍니다.
곁들여 잘 되었다고
여겨지는 일은
최고위원으로 뽑힌 얼굴들입니다.
정청래를 비롯하여
박찬대, 서영교, 장경태가 뽑혔고,
덜 미덥지만
고민정이 되었으니까요.
당 대표와 힘을 모아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더욱 새롭게
우뚝 세워 줄 것을 바랍니다.
굥 정권과 안팎이 벌건
민주당의 수박들의 행태로
의욕을 잃어 글밭을 접었던
어제였읍니다.
하는 짓에서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닥 꿈을 꾼 것은
이재명에 대한 기대입니다.
‘하늘이 낸 사람’으로 여겼던
그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었으니까요.
참으로 잘난 사람들이
겪게 되는 무수한 고통은
예외없이 이재명을
비켜가질 않았읍니다.
마치, 김대중의 인동초처럼,
노무현의 바보짓처럼
너무도 처참하리만큼
가혹했으니까요.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엄청 큰 나무로 자란 이재명은
그 존재로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정당의 내일을 넘어,
나라의 내일을
맡기게 되는 것일 테지요.
어제의 당 대표 수락 연설은
마치 대통령의 취임 연설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아주 좋았읍니다.
이재명의 협치는
수박들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협치와는
너무도 달랐으니까요.
우연한 기회에
손혜원의 이재명에 대한
세 가지 바람을 들었읍니다.
먼저, 문재인을 잊지 말고,
가까이 해야 한다고
충고를 했네요.
더구나 문재인을
바로 찾아 뵙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 때에요.
다음으로는 합당했을 때 약속인
‘3선 연임 금지’와 ‘열린 공천’을
지키는 일입니다.
끝으로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데에
필요한 공천위원
[20220823]
[동녘글밭] 08.23(화)
정경심의 억울
애매하고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한 것이
정경심입니다.
그래서 억울합니다.
아니 정경심만이 아닙니다.
정경심의 가족을 비롯하여
뜻을 같이 한 모든 님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경심은 재판을 받고 있고,
4년이 선고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있읍니다.
어느덧 어림잡아
그 반쯤되는 시간이
훌쩍 지나 갔읍니다.
문제는 정경심이
극심한 몸맘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고통은 뒤로 하더라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몸이 무너지고 있어
걱정이 큽니다.
죄가 있다고
판결을 받은 옥살이인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심각합니다.
목숨은 살려 놓고
봐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누리의
바른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친구, 강금원도
때를 놓쳐 죽게 하더니
저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감옥살이 운영 방식이
도무지 상식적이지 못한 채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사법 농단’에 있읍니다.
그래서 런던 김인수 변호사는
정경심 재판을 두고
‘피고인이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감옥살이를 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
정경심, 강금원만이 아닙니다.
권력의 눈 밖에 나면,
수구 꼴통들의 먹이감이 되면
몰상식은 상식으로 둔갑합니다.
한명숙의 경우도,
신계륜·김재윤·신학용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무현의 죽음도,
벌벌 떠는 문재인도,
조국과 추미애·유시민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선 이재명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나라의
[20220712]
[동녘글밭] 07.12(화)
도어스테핑의 슬픔
윤석열의 지지율이
30% 대로 떨어졌다고
난리인 요즘입니다.
그래서인가 이를 두고
기레기들이 전하는 소식들은
참으로 웃기네요.
첫째로
윤석열이 ‘대노’했다고 하니
아마도 ‘크게 화’를 낸
모양이입니다.
자신이 똥싼 바지를
앞뒤를 바꾸어
거꾸로 입었으면서도요.
둘째로
당사에 ‘윤석열의 사진을
걸으라’고 했다는 소식입니다.
크게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하여 원내대표인
권성동이 한 지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통령의 권위를 세우고,
떨어진 지지율을 올려 볼
작정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앞으로는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겠다고도 전합니다.
아마도 ‘도어스테핑’을 하면서
실수를 연발하여
떨어지는 지지율을
막겠다는 것일 테지요.
겉으로는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 그만 두겠다고
핑계를 댔지만 말입니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문제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굥 정권이지만
해결할 능력은 없나 봅니다.
내 놓은 대책들이 ‘고작’으로
그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니까요.
한마디로 깜도 안 되는 놈이
큰 감투를 써 눈을 가린 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막무가내니까요.
눈만 가린 것이 아니라
9수를 한 것을 보면
머리도 따르지 않나 봅니다.
그래서 나온 우수갯 소리가
박사 위에 검사요,
검사 위에 여사요,
여사 위에 법사라고요.
윤석열이 검찰총장이었고,
김건희가 그의 부인으로 여사이며
법사들의 가르침을 받으니까요.
아무튼 지금, 우리 국민들은
잠깐의 투표 실수로
큰 고통에, 슬픔에
빠져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어쩌겠나요.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요.
따
[20220707]
[동녘글밭] 07.07(목)
하늘이 낸 사람
오늘은 우리들이
꼭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던 일인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폭정’이
발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잡은 글발의 제목이
‘하늘이 낸 사람’입니다.
그것의 중심은 지금,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지요.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보는 눈을 갖는 일입니다.
얼빠진 놈을
얼이 빠진 놈으로 보는 일입니다.
그 중 하나,
어쩌다 우리 곁에
이재명을 두게 된 사실이지요.
주저없이 님의 말을 말씀으로
받아 드리고자 합니다.
------------
여러분,
정치인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잘하면 칭찬하되
찬양하지 마십시오.
지지하되 숭배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가 명령한 바를
시행하는 머슴이자
대리인일 뿐입니다.
정치인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
그들의 약속이
실천되었는지를 보고
판단하시고, 선택하십시오.
우리가 선택한 정치인이
우리가 요구한 대로
제대로 하지 못하면 꾸짖고,
잘 하도록 채찍질하고,
그래도 제대로 못 하면
언제든지 바꿔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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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빠진 공직자들이
나랏돈 훔치고,
국민을 지배하는 나라.
언젠가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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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자기처럼
'인간이겠거니'하며 믿었다.
하지만 저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
지금, 우리들은
참극을 겪고 있읍니다.
그 중 둘, 어쩌다 우리 곁에
김인수를 두게 된 사실이지요.
그 중 셋, 어쩌다 우리 곁에
처럼회원을 비롯한
많은
[동녘글밭] 2022.06.16(목)
수박과 패배의식
사흘 전에
이런 말씀을 드렸읍니다.
‘패배의식‘은
어처구니없는 여러 심각한 일들이
끝없이 생기는 데에서
싹이 튼다고요.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거듭 생겨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을 때라고요.
그런데 이런 ‘패배의식‘이
더욱 커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를 바르게 이끌어야 할
님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일 테지요.
문제를 바르게 짚어
이겨 내려는 것이 아니라
꼴난 ‘기득권 유세’에만
머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크게 실망을 하게 되고,
‘너마저’라는 외마디를 지르며
이내 나가떨어집니다.
비상대책위원장인 우상호의
수박 관련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수박’이라는 표현을 두고
‘어떻게 같은 구성원에게
그럴 수 있나‘라고 했지요.
‘심지어 공당의 대표를 지낸
분에게 수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모멸’이라고 했읍니다.
그러면서
‘특히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두겠다’고 했지요.
이렇게까지 말씀한
우상호의 마음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표현은 옳지 않습니다.
‘수박’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 보다는
‘수박 행동’을 못하게 하는 것이
옳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우상호의 말씀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상호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수박’이라는 표현은
겉과 속이 다른 비유에서
온 것으로
너무 점잖은 표현입니다.
같은 쪽이면서
끝없이 적을 이롭게 하는 짓을
해대는 무리들에게 하는
일종의 경고이지요.
당의 기강을 바르게 세우자면
‘읍참마속’하는 심정으로
바
[동녘글밭] 2022.06.13(월)
이런 나의 패배의식은
2015년 4월 18일부터 시작하여
사흘이 멀다할 정도로
써 오던 글밭을 접었읍니다.
어쩌다 이 땅에
‘굥정권이 탄생’하여
낙심이 컸었기 때문입니다.
‘낙심이 컸다’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은
어쩌면 패배의식이
‘나’를 지배한 것일 테지요.
‘세월호 참사’를 당하고
1년 내내 얼이 빠진 채
멍한 상태로 지냈었지요.
마침, 김형대 피디님의 권유와
부족하지만 뭐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읍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여겨
글밭을 일구는 일에
뛰어 들게 되었지요.
돌이켜 보면
어언 7년 정도나 지난
어제의 일이 되어 버렸읍니다.
그런데 ‘굥정권의 탄생‘으로
글밭 작업을 접을 정도로
낙심이 컸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들 수준’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든 생각이
‘더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국민’으로 여겨
더 이상 힘을 낼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시간은 흘러 다시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했읍니다.
어쩌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에
스스로 묻고 또 물었으니까요.
그 까닭은
나를 비롯한 사람이라는 존재에
들어 있는 ‘존재의 까닭’인
‘욕심‘에 이르렀읍니다.
이 ‘사람의 욕심‘이
’양심‘을 둔하게 만든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존재의 까닭’인 이 욕심을
스스로 다스렸으면 싶어
다시 글밭을 일구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영어로 표기된
이관수님의 댓글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패배의식에 빠지지 말자’는
주제로 글밭을 일구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셈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패배의
[동녘글밭] 2022.06.10(금)
양심세력이 중심되어
‘어제’에서
‘내일’을 알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경험으로
내일을 짐작하게 되니까요.
물리적으로는
‘관성의 법칙’이 있읍니다.
정지해 있는 물체는
끝없이 정지한 채로
그대로 있으려고 합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끝없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이어 가려고 합니다.
어떤 물체든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지키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시간적으로는
지난 시간을 통하여
곧 닥칠 다음 시간을
보다 쉽게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겪어 보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슬기’입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를
찬찬히 돌아보며
소중한 내일을 준비하게 되지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매듭이 되는 굵직한 상처들을
남기고 있읍니다.
1919년 4월의 그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았읍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확 바꾼 것이지요.
그것도 구성원인 국민이 주인인
‘민주 공화국’으로
그 ‘운영 체제’를 바꾸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는
‘나라의 기상’을 바로 잡으려는
‘반민특위’를
없애버린 일이 생깁니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님들을 높이 사고,
반역한 님들을 벌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분단의 아픔’, ‘빛고을의 통한’,
‘세월호의 참상’,
‘굥정권의 탄생’입니다.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
역사로 굳어진
‘우리의 현대사’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래서 엊그제는
‘어찌하여 수박인가’를 제목으로
글밭을 일구었던 것입니다.
그 까닭을
‘욕심’에서 비롯된
‘사람의 존재 원리’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함께 모여 사회를 구성하고,
나
[동녘글밭] 2022.06.08(수)
어찌하여 수박인가
살면서 자주 하게 되는
물음이 있읍니다.
그것은 ‘어찌하여 수박인가’를
묻는 물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물음은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읍니다.
‘어찌하여 변절인가’를
묻는 물음으로요.
그 까닭은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인
‘우리들 안’에 이미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존재의 까닭인
‘욕심‘에 있기 때문이지요.
일주일 전쯤인
지난 유월 첫날의 글밭,
‘역사의 변곡점’에서
살짝 건드리긴 했읍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하자구요’로 끝을 맺은
두 문구를 다시 가져 옵니다.
----------------
욕심이라는 ‘작용 원리’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임을 알고
제발, 그 욕심을 조절하자구요.
꼭 필요한 것이 욕심이지만
그 욕심으로 우리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구요.
----------------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욕심‘입니다.
이 존재의 까닭인 욕심이 있기에
‘수박’으로, ‘변절’로
저 또한 바꿀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끝없이 하는 자기 성찰인
‘스스로 돌아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돌아보는 것으로
내 속에 들어 있는 이 ‘욕심을
조절하는 것’에
그 뿌리를 둡니다.
그래서 삶은
끝없는 ‘자기 혁명’이요,
우리는 늘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곤 했지요.
그래서 생긴 것이 ‘공과 사’를
끝없이 구분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짓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 드립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다릅니다.
‘공공의 이익’을
‘사사로운 이익’ 보다는
앞에 두게 되지요.
그렇긴 하지만
우리들
[동녘글밭] 2022.06.06(월)
동녘의 수박 타령
‘대선’에서 져 정권을 내 주고,
석달도 채 못 되어 치른
‘지선’에서도 죽을 쑨
민주당입니다.
그래 놓고선 그 책임을,
공을 세운 이재명에게
몰아붙이는
‘민주당의 수박들’입니다.
돌이켜 보면
앞장서서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을 때는
‘180석의 민주당’이었읍니다.
이낙연이 대표로 등장하며
개혁을 늦추면서
미적거리더니 드디어
‘이낙연류’가 형성됩니다.
그 결과,
당의 실세가 되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겉으로는
그럴싸한 까닭을 내 세웁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엄중과 협치’입니다.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당원을
‘강성 당원’으로 몰아치며
당을 해치는 무리들로
색깔을 칠합니다.
끝내 합리를 내세워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합니다.
그 결과, 저들이 얻은 것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수박’이라는 별명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수박이 아닌 체를 해 댔었지요.
하지만
이번 대선, 지선에서도 져
뜻대로 안되자
부끄러움을 잊은 채
‘사악한 짓거리’를 합니다.
‘전략 공천’으로
그럴싸하게 ‘합리’를 가져와
경쟁자들을
힘든 구렁텅이로 내 몹니다.
그러니까 이낙연류가
당권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계파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했지요.
그 결과를 보면
저들의 뻔한 속셈을
읽고도 남습니다.
전라도에서
수많은 ‘무소속 승리’가
그 까닭을 말해 줍니다.
미리 경선을 치루면 될 것을
‘전략 공천’을 내 세워
마치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꾸밉니다.
촉박하여 선거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불리한 여건’을 만들어
후보자를 압박했으니까요.
이제는 그
[동녘글밭] 2022.06.01(수)
역사의 변곡점에 서서
바지에 똥을 싸 그냥 뭉개고 있는 ‘나’를 봅니다.
훌훌 털어내면 될 것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될 것을 어쩌지 못하는 ‘나’입니다.
이런 ‘나’가 한 둘이 아닌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눈을 버젓이 뜬 채로 ‘촛불정권’을 도둑맞은 짓을 해 놓고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들’이니까요.
이러한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살아 온 과거에서 뜻을 찾는 것이 역사이며 그 역사에서 ‘우리들의 몫’을 찾게 됩니다.
이 답답한 역사는 정여립, 허균의 시대에도 그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도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정반합으로 내일을 열고, 잠시의 반동으로 앞으로 나가는 역사라고 여기며 사는 오늘입니다.
이 오늘에 ‘나’는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없이 못난 ‘나’에서 무기력한 ‘나’를 발견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할까요?
허균의 호민론에 나오는 원민, 항민을 넘어 호민에 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호민은 다름 아닌 ‘떨치고 일어나는 깨시민’일 테지요.
오늘은 투표로 이런 뜻을 모으는 지방 선거날입니다.
이런 어처구니를 깨부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주어진 날이기도 합니다.
그 꿈틀거림에 기대를 걸며 다시 ‘함께 사람사는 누리의 꿈’을 소박하게 꾸어 봅니다.
그러자면 안팎으로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해야 할 테지요.
그러자면 그 첫걸음으로 ‘바른 말 찾기’에 나서야 합니다.
‘보수’도 아닌 것들이 ‘보수’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니까요.
사악한
[동녘글밭] 2022.03.25(금)
개혁의 대상이 된 민주당
어제,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로
박홍근이 뽑혔읍니다.
이낙연 류 기득권 수박들이
이끌어 왔던 민주당이
달라지고 있읍니다.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짓을 당하고도
도무지 바꿀 용기를
내지 못했던
민주당이었읍니다.
그 많은 의원들이
욕심에 빠져
기득권을 누리는 데에만
급급했으니까요.
그 결과가
범죄자로 여겨지는 그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내어 주고 만 민주당입니다.
피투성이의 싸움에서
쓰러져 가는 대선판을
지켜보며 일구었던
지난 글밭을 가져 옵니다.
보름 전인 3월 10일의
‘다시 촛불’이란 제목의
글밭 중의 한 대목입니다.
한명숙의 억울함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의
억울함을 알고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조국, 추미애가
곤욕을 치르었는데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것도
바로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서의 ‘우리들’은
사실, 좁히고 좁히면
바로 ‘민주당’입니다.
죄수를 사주하여
한명숙을 죄인으로 만들어
감옥을 살게 했던 검찰입니다.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조국, 추미애도
그 엇비슷한 과정으로
지금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수박들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기득권에 기대어
짬짜미를 해 왔지요.
180석을 가지고도
개혁을 바라는
시대의 요구를 모른 채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 소중했던
‘촛불 혁명’의 뜻을
놓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들이 지금입니다.
그 지금이
개혁을 바라
[동녘글밭] 2022.03.20(일)
사람이 아닌 저들
사람을 한자로
인간(人間)이라고 씁니다.
사람은 그냥 우리같은 존재를
일러 부르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덧붙여 집니다.
어쩌면 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더 강조된 말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순 우리말이며
인간(人間)은 한자에서 온
우리말입니다.
같은 우리말이지만
어떤 경우는 그 쓰임새를
다르게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보통, 존재의 이름으로
쓰는 것이 좋겠지요.
그리고 인간은
사람의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 쓰는 것이 좋겠지요.
이렇게 구분해 놓고,
오늘의 글밭 제목을
새겨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동녘글밭 제목은
‘사람이 아닌 저들’입니다.
존재로서의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저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읍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탈을 썼으면서도
사람같지 않은 점을
강조한 것일 테지요.
겉은 사람이지만
안에 담겨있는
그 실체를 볼 때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이기 보다는
온통 욕심으로 뭉쳐진
‘욕심의 화신’으로
작용,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살리기 보다는
공동체를 죽이는 몫을
주저없이 하는 님들이지요.
따지고 보면 이런 짓은
결국, 자신마저 고립시키고
끝내 모두를
파멸의 길로 몰아 넣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의 화신’이 되어
어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요, 사람들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람이 어울려 살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이 여겨집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있게 한 것이
바로 ‘욕심의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지요.
문제는 그
[동녘글밭] 2022.03.17(목)
변절의 시대
변절은 지금까지 지켜온 뜻을
바꾸어 배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변절이 전체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까지 변절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입니다.
대개의 경우,
욕심이 솟구치지만 억누르며
사람다운 길을 걷는 것이
보통이지요.
하지만 그것과는
정 반대의 경우도 생깁니다.
지금까지 지켜온 신념을 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신념으로
갈아탑니다.
양심을 팔아먹은 것이 먼저였지만
어떤 경우는
나라를 팔아먹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양심을 배반하여
쑥스러운 일로 여기지만
곧 익숙해져
적극적으로 변하곤 하니까요.
이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만이
이렇게 이어져 온 것은
아닐 테지요.
사람이 모여 만들어 온
사람의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 사람이 풀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그 끝점에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으뜸 가르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나 봅니다.
그 예전의 어느 때처럼,
그 예전의 그 때처럼
변절은 끝없이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욕심을 간직한
우리, ‘사람들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볍게 보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그 뿌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개인으로, 조직으로,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그 뿌리를 잘라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긴 문을 여는 열쇠처럼
한 번에 문을 열려는,
그런 식의 욕심도
버
[동녘글밭] 2022.03.12(토)
스스로 돌아보며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흐름을
헤아려 볼 참입니다.
‘나라의 내일’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 ‘자기 성찰’인
‘스스로 돌아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겪은
‘오늘의 아픔’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사실, 대선판이라
‘문재인, 민주당 비판’을 비롯하여
그 어떤 비판도 할 수가 없었지요.
괜히 비판이 분열로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래서 참고 또 참았읍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선거에서 졌으므로
편안하게 비판하여
‘내일의 승리’를 꿈꾸어 봅니다.
이런 ‘결과의 으뜸 까닭’은
‘점잖은 문재인’에 있고,
그 다음은
‘머뭇거린 민주당’에 있읍니다.
먼저,
문재인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나라를 선진국으로 올려 놓았고,
특히 외교, 방역에서 너무도
훌륭한 역할을 해 주었지요.
하지만 그 밖에서는
너무도 무능했읍니다.
그 첫째가 ‘인사문제’입니다.
취임하고
바로 한 ‘인사’를 빼 놓고는
도무지 잘한 ‘인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최재형, 이낙연, 홍남기,
전해철, 김현미, 유은혜, 박범계,
김오수, 김진욱, 이효석 등입니다.
임명된 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잘 해 주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요.
둘째, ‘세월호문제’입니다.
참담한 세월호 침몰,
그 아픔을 안고 세워진 정권인데
도무지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으니까요.
셋째, ‘검찰, 법원, 언론방송의
개혁문제’입니다.
맘대로 권력을 휘두른 검찰,
상식을 뒤엎는 판결,
거짓을 일삼는 언론방송을
그대로 둡니다.
특히 대 놓
[동녘글밭] 2022.03.10(목)
다시 촛불
지금도 개표 중입니다.
아직도 그 결과를
내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달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 이재명이 윤석열에
0.8%를 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읍니다.
어찌어찌하여 이재명이
간신히 이긴다고 하여도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든 점입니다.
한명숙의 억울함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의 억울함을 알고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조국, 추미애가
곤욕을 치르었는데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것도
바로 ‘우리들’이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진다면
그 진 것에서 ‘하늘의 뜻’을
찾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하늘의 명령’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어찌하여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이것은
‘이재명이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고작 한 것이
‘저들을 사람’으로
여겼던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그 점잖은 문재인입니다.
제2, 3의 문재인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까요.
이 글밭을 일구는 중에
이재명이 진 것을 인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네요.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온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었도
그 상황을 좀 멀게 낙관적으로,
쉽게 여겼던
저 자신이 밉네요.
‘나라의 뿌리’ 생각에
대한 믿음은 저만 갖고 있어야
하나 봅니다.
아직 우리 시대는
‘이재명을 제대로 이
[동녘글밭] 2022.03.07(월)
윤석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때론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읍니다.
때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읍니다.
때론
이런 윤석열을 임명한 문재인이
원망스럽기도 했읍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윤석열에게
크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윤석열,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으니까요.
얼마나 능력이 없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으니까요.
얼마나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으니까요.
그야말로
조금도 부끄러워할줄도 모르는,
그냥 사람의 탈을 쓴
님으로만 보이니까요.
그래서
진심으로 ‘윤석열이 고맙다’는
말씀입니다.
타산지석이요, 반면교사며
역행보살의 교훈을
남겨 주었으니까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검찰들이
나쁜 님들인지를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얼마나 판사들이
나쁜 님들인지를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얼마나 언론과 방송인, 기자들이
형편없는 님들인지를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자신들의 힘을 이용하여
짬짜미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참 검찰’과 ‘참 판사’와
‘참 언론방송인과 기자’도
있으니까요.
검찰은
우리 몸을 해치는
병원균을 잡아먹는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판사는
우리 몸을 제대로
반듯하게 버티게 해 주는
‘등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언론방송인과 기자는
우리 몸의 팔다리를
제대로 움직이게 해 주는
‘신경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할
검찰과 판사와
언론방송인과 기자가
썩었으니까요.
그 썩은 정도가
[동녘글밭] 2022.03.03(목)
투표로 치르는 ‘촛불혁명’
어느덧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 3월 9일이니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읍니다.
사전 투표일도 3월 4일과 5일이니 내일과 모레입니다.
스스로 숨을 거둔 박원순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의 악몽이 도사리고 있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지난 해 4월 7일, ‘서울 시장선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니까요.
행여 저들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내어 주어 이명박근혜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언제가 말씀을 드린 대로 우리는 안팎으로 꽃놀이패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안으로는 놀랍도록 변한 ‘우리들’이, 우리 ‘촛불 시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촛불 시민’은 스스로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려는 뜻이 너무도 큰 사람들을 이릅니다.
그 님들은 기꺼이 낮아지기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깨시민’이며 그 님들의 역할은 ‘거름’이며 ‘걸레’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느덧 그 님들의 뜻은 ‘촛불 민심’으로 ‘집단 지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밖으로는 ‘윤석열’이라는 안성맞춤인 상대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공정과 상식’을 구호로 내 세우고 있지만 사실, 그것과는 먼 거리, 정 반대의 님입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을 구해준 대통령을 배신할 정도니까요.
검찰이라는 공권력을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고, 지키는 데에만 쓴 님입니다.
처인 김건희와 장모인 최은순의 불법과 비리를 감싸주는 역할을 자랑스러워할 정도니까요.
도무지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할 줄도 모르는 몰상식에 머물러 있는 님이 분명하니까요.
무식이 느껴질 정도로 갖추
[동녘글밭] 2022.02.27(일) 헷갈리는 삶
2월 첫날에 글밭을 일구었으니 거의 한 달이 다 된 셈입니다.
그래서인가 그동안 글밭을 만나지 못하신 님들은 의아하게 여기십니다.
아픈 것은 아닌지 하는 등을 물어 오시니까요.
이참에 그동안 글밭을 일구지 못한 까닭을 밝히는 것이 좋은 듯싶어 밝히고자 합니다.
[동녘글밭]은 [동녘의 초당글밭]으로 2015년 4월 18일(토)에 첫 시작을 하였지요.
‘세월호에서 4월 혁명을 느끼며’라는 제목으로요.
그리고 2017년 2월 13일에 [동녘글밭]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지요.
이렇게 띄엄띄엄 일구기 이전에는 거의 매일을 하루가 멀다 싶게 글밭을 일구곤했지요.
마침, 대선판을 앞두고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행여 갈등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문재인 정권의 부정적인 모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될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애써 근본, 본질 문제를 다루어 볼 참입니다.
결론은 ‘저들은, 저 수구 꼴통들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던진 이재명의 ‘한 말씀’이 겹칩니다.
‘내가 노무현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라고요.
관용과 용서는 종교와 개인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종교 밖과 우리의 영역은 그럴 수 없읍니다.
무섭도록 책임과 댓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종교와 개인의 영역으로만 머물던 천국과 극락은 거짓일 뿐입니다.
김대중이 겪은 고난과 그것을 넘은 용서는 온전히 개인으로 끝나야 합니다.
개인이야 훌륭한 일이지
[동녘글밭] 2022.02.01(화)
젊은이들여, 분노하라!
지금은 설날, 이른 새벽입니다.
호랑이띠의 한 해가
시작하는 순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이런 호랑이띠인 임인년 올해는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있어
참으로 중요한 한 해입니다.
그리고 그 두 달 후 즈음인
6월 1일은 지방선거가 있어
이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새로 뽑는
선거날을 한 달쯤 남겨 두고 있는
지금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이요.
그래서 잠시,
대선판을 깊이 살펴 봅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여론조사’가 판을 칩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조사 기관이
비 온 뒤 돋는 죽순 마냥 생겨나
‘여론조사’를 휘젓읍니다.
‘여론조사’를 빙자한 ‘여론조작’이
판을 쳐도 그냥 보고만 있는
누리가 펼쳐진 셈입니다.
바르고 믿을 수 있는, 바른 잣대인
‘여론조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할 테지요.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지만
대선 후에나
고민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여론조사 기관’을
보호, 육성해야 할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심을 왜곡시켜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는,
너무도 곤란한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날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이 때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으니까요.
‘나라의 내일’이 달려 있으니까요.
‘나라의 꿈’이 ‘나의 꿈’으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일’에
우리는 ‘분노’를 해야 합니다.
‘분노’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큰 화가 곧 미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분노’가
절대로 필요한 오늘입니다.
내일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그들
[동녘글밭] 2022.01.05(수)
어쩌다 나와 가지고
‘김어준 저장소’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의 글이
올려 져 있읍니다.
지금의 정치판을 휘젓고 있는
윤석열을 제대로 꼬집은 것으로
보여 그대로 가져 옵니다.
그냥, 조용히 음지에서
마누라랑, 장모랑 부동산 투기나
하며 재산 불리고 살지,
뭐하러 언감생심
대통령씩이나 하겠다고,
걸떡대서 패가망신을 자초하는지.
등신 모지리 새끼.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암덩어리
‘국민의 적’당을 와해 시키고,
전복시킨 공로는 인정해 주마.
댓글이 15개 밖에 달리지
않은 것으로 보면 올린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면 올린 것이 눈에 띄지 않아
미처 알지 못하여 그런가 봅니다.
어쩌면 지금의 정치판을
이렇게 꼭 집어 ‘있는 사실’을
비트는지 속이다 후련하네요.
그래서 순간,
‘글밭에 담아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 글밭을 일구는 중입니다.
마치, 김어준이
역사적인 이번 대선판에
‘열심히 밭을 갈아야 한다’는
명령에 따른 것 처럼요.
어쨌거나 살펴 보면
‘김어준 저장소’님이야말로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남기신 말씀들이
‘고쳐야 할 현실’을
어찌나 ‘통쾌’하게 비트는지
감탄할 지경입니다.
이 ‘감탄’은 ‘공감’에서 온 것이며
이런 ‘공감들’이 모여
‘집단 지성’으로
자리를 잡게 될 테지요.
그러니까 이런 과정을 두고,
김어준은 ‘밭을 갈라’고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밭을 가는 일’은
바로 ‘뜻을 모으는 일’이니까요.
그 뜻이 어떤 뜻인지는
애써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더 멋진 ‘나라의 내일’을
꿈꾸는 것이며 좁히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