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2/2023
2022.10.29.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서 ‘안락사는 존엄한 죽음인가?’라는 주제로 생명윤리세미나를 10월 27일(목)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했다.
2016년 제정되고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현재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만이 법적 허용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의료·법조계와 종교계, 정부,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하지만, 올해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안락사는 안 된다”는 기본적 공감대에도 전략적 미화를 위해 ‘존엄사’에 이어, 이번 법안에는 ‘의사조력자살’을 미화하는 ‘조력존엄사’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개정안 핵심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처방해 자살을 돕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협회 측은 “법으로 자살을 권하고 부추기겠다는 것이고, 이후 환자들 뜻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생명을 종결하는 안락사로 확대될 수 있다”며 세미나 취지를 밝혔다.
세미나에서는 장보식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를 좌장으로 의료 분야 문지호 원장(명이비인후과), 법률 분야 연취현 변호사(법률사무소Y 대표), 신학 분야 이길찬 목사(새길교회)가 발제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본 안락사’라는 제목으로 문지호 원장은 “지난 6월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조력존엄사’ 법안은 ①말기환자로서 ②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 중 ③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조력존엄사로 미화했지만, 이는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의사조력자살’을 뜻하는 것으로 안락사 허용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말기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겠다며 의료진 손을 빌어 의료기관에서 자살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지호 원장은 “의사가 직접 투약하면 일반적 안락사,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본인이 투약하면 의사조력자살이라고 구별해 부르지만, 둘 다 자의적·적극적 안락사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고 윤리적으로는 구분도 무의미하다”며 “적극적으로 죽이는 행위든(killing) 죽게 내버려두는 행위든(letting die), 둘 다 인위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원장은 “이와 달리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연명치료중단은 안락사가 아니라, 임종에 임박한 환자의 사전 지시를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사(自然死)를 돕는 것”이라며 “생명의 연한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연명의료결정법과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락사는 정반대 가치를 가진다. 안 의원은 연명의료결정법안을 소극적 안락사로 여기고, 적극적 안락사인 의사조력자살을 끼워 생명을 바라보는 가치가 정반대인 내용을 법제화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느 나라나 안락사를 도입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지만, 일단 안락사가 허용되면 기준은 무너진다”며 “네덜란드의 경우 2001년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면서 말기환자로 국한했지만, 2018년 정신적 고통을 겪는 환자, 2020년 중증 치매와 12세 미만 불치병 어린이에게 각각 확대시켰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아무리 엄격하게 시행하더라도 안락사를 향해 한 번 문이 열리면, 더 많은 사람들을 안락사 대상으로 끌어들이게 된다”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고, 매년 조력자살을 택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의 실례가 되고 있다”고 했다.
문지호 원장은 “자기결정권이 모두 존엄한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안락사의 가치관은 생명의 존엄이 아닌, 생명을 경시하는 ‘자살’의 가치관”이라며 “인간에게 죽음은 극복하고 싸울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일부다. 이러한 가치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고 짚었다.
문 원장은 “내 뜻대로 주어지지 않은 생명을 내 마음대로 종결하는 안락사는 자살과 마찬가지여서,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고 자기결정권 범위를 벗어난다”며 “죽더라도 고통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이라고 인정할 경우, 국민 개개인 생명이 생사의 경계선에 놓일 때 죽음으로 쉽게 밀려나게 될 것이다. 생명이 공리주의에 밀리면, 살고자 하는 자기결정권은 발휘도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계는 법안에 대한 우려와 강한 반대 목소리로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법 통과 국가들에서 일반인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됐다”며 “생명을 살려야 할 의대생들에게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일반인들은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선한 행위라면, 의사가 안락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죽이는 법을 배운 의사는 그렇지 않은 의사들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런 의사라면, 말기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자살을 고려해 보라고 진지하게 권할 것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한두 번 안락사 동의를 받아낸 의사는 곧 익숙해질 것”이라며 “이미 법이 시행된 나라의 의사들도 처음이 어렵지, 점차 죄책감 없이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안락사 법안은 환자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선한 명제로 시작해, 환자를 죽음으로 밀어내는 악한 행위로 끝난다”고 했다.
‘조력존엄사라는 이름의 죽음선택권에 대한 법률적 고찰’을 제목으로 연취현 변호사는 “자살교사·방조를 처벌하는 국가에서, 생명권에 죽음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는가”라며 “생명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본질적 내용의 침해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취현 변호사는 “이미 의식 회복가능성을 상실해 더 이상 인격체로서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후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된다”며 “이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2009년 김할머니 존엄사 판결문을 인용하기도 했다.
연 변호사는 “최근 정치가 입법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으로만 흐르고 있는데, 그것이 국민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까지 외면하는 행태는 몹시 안타깝다”며 “법률 제정 후 부작용을 수정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른 다음이 될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하자는 입법 논의가 과연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입법일까”라고 반문했다.
‘안락사는 존엄한 죽음인가?’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이길찬 목사는 “‘존엄사’는 안락사를 미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 낸 말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소극적 안락사까지 ‘존엄사’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환자가 식물인간상태일 때, 환자의 뜻을 확인할 수 없음에도 가족들을 통해 추정·대리 판단해 소극적 안락사를 실행한다. 이는 명백한 안락사이자 살인이다. 그럼에도 ‘존엄사’라고 전략적으로 미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길찬 목사는 “근원적으로, 과연 죽음이란 말에 ‘존엄’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존엄사’ 개념 자체가 가능한가? 안락사가 존엄한 죽음이라면, 이 외의 다른 죽음은 모두 비참한 죽음인가”라며 “‘존엄사’가 좋은 말과 제도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친동성애자들이 ‘차별금지법’이라는 말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듯, 안락사 찬성자들이 ‘존엄사’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불과 4년 전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들었는데, 벌써 이 범위를 넘어서는 안락사를 적극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소위 ‘존엄사’와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를 허용할 경우, 말기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경제적·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소극적 안락사를 원하는 경우 무엇을 근거로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방어선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다. 더 이상 양보하거나 물러서면 안 된다”고 천명했다.
그는 “우리 인간은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부분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이것은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죽음과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의연하게 죽음과 고통을 껴안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연약함과 존재론적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인생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감사하는 것이며, 마지막 순간 죽음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세로 사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단축하지 않고 순리대로 자연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나이와 건강 상 누가 봐도 이제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실 때가 됐는데 더 살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되고, 아직은 더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 좀 더 적극 노력해야 하는데 성급하게 생명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며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겪은 욥은 자살하지 않았다. 한순간 모든 재산과 자식들과 건강까지 잃었지만, 심지어 아내로부터 자살하라는 유혹까지 받았지만,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았다. 죽음과 고통의 문제에서도 우리는 욥처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